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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날]폭염 속 인형탈 알바 "시급 8500원, 올려주세요"


[위험한 여름-③]더위에 바깥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동병상련' 근로자 걱정에 "괜찮다" 눈치보며 손사래

편집자주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인형탈을 쓴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이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인형탈을 쓴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이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빨간날]폭염 속 인형탈 알바 "시급 8500원, 올려주세요"
25일 오후 1시30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번화가. 섭씨 30도가 넘는 기온에 행인들은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로 한복판에서 카페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A씨는 그 와중에 고양이 모양 인형탈과 털옷을 입고 있었다. 연신 전단지를 돌리며 더위를 쫓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더운지, 지나가다 손선풍기를 쐬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날씨가 무척 더운데 일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A씨는 "오후 5시까지 근무해야 되는데 정말 너무 덥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더운 것도 더운 것이지만 시급이 8500원 밖에 안된다. 좀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바깥에서 더위와 싸우는 이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서울 중구 일대를 다녀봤다. 땡볕에서 작업을 하는 이도, 쓰레기를 치우는 이도, 시민 안전을 지키는 이도, 전단지를 돌리며 동분서주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온은 평균 31도, 체감온도는 33도였다. 그나마 구름이 껴 있다 간간이 해가 고개를 내미는 날씨라 다른 날보다 나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바깥을 나선 지 얼마 안돼 이마에 땀이 흘렀다. 5분이 지나자 등줄기며 온몸이 땀투성이가 됐다. 그럼에도 스쳐간 시민 중 누군가는 "그래도 오늘이 며칠새 제일 시원한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무색한 날씨, 시민들은 저마다 부채며 손선풍기며, 아이스 음료를 들고 더위와 싸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더운 날씨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니느라 분주해하던 우체국 집배원의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무더운 날씨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니느라 분주해하던 우체국 집배원의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첫 장소로 광화문 광장을 향했다. 의경 3명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바로 전날인 24일 오후 2시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근처서 근무를 서던 한 의경이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터였다.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구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흰색 팔토시를 한 의경 B씨는 "정말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B씨는 많이 더울 때는 30분, 덜 더울 때는 1시간씩 광장서 근무한다고 답했다. 휴식을 취할 땐 근처에 있는 천막으로 향한다. 

호텔처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이중고'였다. 더워서 힘들고, 그런 티를 못 내느라 더 힘들었다. 이들은 주변을 살피고 표정을 숨기고 애써 웃어 보이며 조심스러워 했다. 

한 호텔 안내직원이 모자를 벗고 땀방울을 훔친 뒤 다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한 호텔 안내직원이 모자를 벗고 땀방울을 훔친 뒤 다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호텔 안내직원 C씨는 무더운 날씨에도 소재가 두터워보이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덥지 않냐고 묻자 "일한 지 일주일밖에 안됐다"며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의자에도 앉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의자 뒤에 있는 선풍기 한 대에선 더운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더위를 식혀주기엔 역부족이었다. C씨는 "선배들이 시원한 것 사주면 마시면서 잘 이기고 있다"며 "제복도 얇은 걸로 바꿔준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호텔 발렛파킹 직원 D씨도 긴 팔에 긴 바지, 심지어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그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근무한 뒤 교대하며 쉬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경력이 30년 정도 된다는 D씨는 "젊었을 땐 그래도 버틸 만했는데, 요즘은 많이 덥다"며 모자를 잠시 벗고 땀을 훔쳤다. 이어 "운동으로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복지 차원에서 좀 시원하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더운 날씨에 고생하면서도 동종업계 근로자들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동병상련'이었다. 

서울 중구 한 호텔 주차안내요원 E씨는 티에 재킷, 긴 바지에 모자까지 쓴 채 땀 흘리고 있었다. 안내봉을 든 채 차량을 안내하고,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주고, 차량마다 인사를 건넸다. 그럼에도 E씨는 "여기는 그나마 50분 근무 후 쉴 수 있어서 주차요원 중에선 나은 편"이라며 "서울 구로구 한 백화점 안내요원은 정말 열악하다. 처우도 150만원 남짓인데 잘 살펴봐 달라"고 청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환경미화원 G씨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말을 걸러 다가간 순간 말문이 막혔다. 미소 띤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너무 덥지 않느냐"고 묻자 "원래 체질이 땀이 많아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근무 시간은 총 8시간. 3시간, 3시간, 2시간씩 일하는데 중간중간 쉰다. 말을 하면서도 청소에 여념이 없던 그는 노고를 얘기해달라는 말에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이라 차라리 나은 편"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외려 다른 이들 걱정을 했다. 그는 "사장 밑에서 일하는 미화원들이야말로 고생을 많이 한다"며 "일이 없어도 무조건 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는 이들의 말에선 기운이 느껴졌다. 일명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는 배달직원 F씨는 "올해 좀 많이 덥긴한데, 이 나이에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며 "저는 백화점이나 사무실을 다녀서 그래도 좀 낫다. 다른 직장인들도 다들 힘들지 않느냐"고 말했다. 

폭염으로 무더운 날씨, 서울 중구 명동서 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폭염으로 무더운 날씨, 서울 중구 명동서 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들을 폭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마련됐지만 유명무실한 상황. 고용노동부는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폭염특보 발령 시 1시간 일하면 10~15분 휴식시간을 주도록 했다. 폭염경보 발령시에는 오후 2∼5시 작업을 가급적 멈추고 시원한 물 등을 줘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이 24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5%만 '1시간 일하면 10~15분씩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고 답했다. '재량껏 쉬고 있다'는 대답은 45.3%(96명), '별도로 쉬는 시간 없이 일한다'는 응답이 46.2%(98명)에 달했다. 

실제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응답도 비슷했다. 건설현장 노동자 H씨는 "올해 폭염주의보, 폭염경보가 내린 날에도 정부 가이드라인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그런 가이드라인이 있는 줄 잘 모르는 근로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원문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72515053538090&pDepth=the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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